여자들의 수영장
수영장에 간다고요? 그거 그냥 물놀이가 아닙니다. 남자분들은 그냥 수건 하나에 트렁크 수영복 던져 놓고 "오케이, 가자!" 하실지 몰라도, 여자들한테는 그게 그렇게 간단하지 않아요. 수영복 고르는 순간부터 진이 빠집니다. 비키니, 원피스, 래쉬가드. 이 세 가지 중 하나를 고르는 일이 생각보다 어렵거든요. 비키니는 예쁘긴 해요. 입으면 딱 “이 여름은 나다” 싶은 자신감이 넘치죠. 문제는 물에 들어갔다 나올 때 상의가 물 위에 따로 떠다닐 확률이 꽤 높다는 겁니다. 여러분은 물에 젖어 우두커니 서 있는데, 여러분의 비키니 상의는 바람 따라 수영장 반대편에서 흔들리고 있다면? 이거 참 난감하지 않겠습니까?
그렇다고 원피스를 입자니 애매합니다. 비키니처럼 화끈한 느낌은 없고, 그렇다고 래쉬가드처럼 아예 몸을 가리는 것도 아니죠. "나도 나름 신경 썼다" 같은 중간 어필용인데, 신경 쓰면서도 딱히 티는 안 나는 그런 패션이랄까요. 그러다 결국 많은 분들이 선택하게 되는 게 래쉬가드입니다. 이건 그냥 안전빵이에요. 군살? 싹 가려줍니다. 화상? 막아줍니다. 하지만 문제는요, 래쉬가드 입고 가면 꼭 현장에서 깨닫게 돼요. ‘아… 나 혼자 겨울옷을 입고 있는 건가?’ 친구들은 다 비키니로 반짝반짝 여름을 만끽하는데 저만 혼자 강원도에서 온 사람 같거든요. 그 순간 혼자 속으로 위로합니다. ‘그래, 피부는 안 타겠지.’ 이러면서요.
짐을 싸는 것도 장난 아닙니다. 남자분들은 수건 하나 들고 나가지만, 우리는요? 이삿짐 수준이에요. 일단 선크림 두 종류. 얼굴용이랑 몸용 따로 챙겨야 하죠. 그리고 수영장 물에 머리 상하면 큰일이니까 헤어 에센스는 필수고요. 화장은 무조건 방수로. 그렇다고 해서 방수가 중요한 건 아니에요. 왜냐면… 물에 안 들어가거든요. 중요한 건 또 있습니다. 튜브나 소품도 꼭 챙겨야 해요. 플라밍고 튜브 같은 거요. 이건 물놀이를 위한 게 아니에요. 사진 찍을 때 인생샷 배경용이에요.
수영장에 딱 도착하면 제일 중요한 건 뭐다? 물에 들어가기 전에 사진부터 찍는 겁니다. 한 번 물에 들어가면 화장 다 날아가고 머리 떡질 텐데 그때 찍으려고 하면? 사진은커녕 귀신의 집 주인공처럼 나올 거거든요. 그래서 친구들이랑 다리 길어 보이는 각도 연구하고, 완벽한 포즈 잡느라 바쁩니다. 각도 잘못 맞추면 친구들끼리 싸움 나요. “야, 너무 길어 보이잖아! 다리만 나오면 이게 사람이냐 고무줄이냐?” 그 난리통에 주변 사람들은 벌써 물에 들어가서 신나게 놀고 있는데, 우리는 아직 사진 한 장을 못 건진 거죠.
그러다 드디어 마음먹고 물에 들어가기로 합니다. 근데 꼭 그런 친구가 있어요. 수영도 못하면서 비키니는 당당하게 입고 온 친구. 자기는 인어공주인 줄 알고 멋있게 뛰어드는데, 물속에 들어가자마자 갑자기 난리가 나죠.
화장하고 머리세팅이 빠지고 있는 중이죠. 물 위로 마스카라가 떠다니고 눈가에는 이미 팬더 한 마리 입주했어요. 머리는요? 물에 젖는 순간 예쁘게 말아 올린 앞머리가 문어다리처럼 퍼져 나와서 이마에 착 달라붙어 있습니다.
그 친구는 풀장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물에 젖은 머리로 조용히 반성하고 있어요. 물개처럼 떡진 머리로요. 그 모습에 다들 슬슬 깨닫습니다. ‘그래, 이제 놀기는 끝났다. 떡볶이 타임이구나.’
사실 우리는 수영장에 수영하러 가는 게 아니에요. 수영은 핑계고 떡볶이가 본 게임입니다. 풀장에서 나와서 떡볶이랑 튀김 세트를 주문하는 순간, 그때부터 진짜 휴가가 시작되는 거죠. 그리고 늘 마지막에 하는 말은 똑같아요.
"야, 다음엔 그냥 수영장 말고 실내 포차로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