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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탠드업 코미디

어디까지가 나인가?

스탠드업 코미디 2025. 2. 28. 10:52

데카르트는 생각하더니 존재했다. 나는 생각했더니 피곤하더라.

데카르트 아저씨가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했잖아? 멋있지. 근데 나도 이런 멋진 명제를 하나 만들어 보고 싶었어. 인생의 본질을 꿰뚫는 문장! 절대 반박할 수 없는 진리! ...근데 생각하면 할수록 머리만 아픈 거야.

유튜브 보면 맨날 "참자아를 찾으세요~" 이러잖아? 아 참자아는 무슨, 내 핸드폰 충전기부터 찾고 싶다고. 그리고 한 가지 궁금해졌어. 내가 어디까지 챙겨야 '나'인 걸까? 챙길 범위가 너무 넓으면 과로사할 거 같고, 너무 좁으면 친구가 없어. 도대체 "어디까지가 나인가?"

이리저리 생각해 봤는데 실마리가 안 잡히더라. 그러다 갑자기 영화에서 나오는 자기 복제 기술이 떠올랐어. 가상의 이야기지. 하지만 이게 또 존나 찝찝한 거야.

"만약에 기술이 너무 발전해서, 내 영혼이랑 기억, 사고방식까지 먼지 한 톨 안 다르게 복사할 수 있다면? 그걸 나라고 부를 수 있을까?"

이게 말이야, 나랑 완전 똑같잖아? 뇌의 주름 개수부터, 어제 봤던 유튜브 영상의 광고 스킵 타이밍까지. 근데 막상 생각해 보니까 나라고 할 수가 없겠더라.

일단 원본과 복사체가 같은 공간에 존재할 수 없어.
같은 곳에 있어도 시야가 다르면 이미 다른 경험을 하고 있는 거잖아? 한 놈은 왼쪽을 보고 있고, 한 놈은 오른쪽을 보고 있으면? 그 순간부터 삶의 분기점이 생긴 거야.

여기서 결론이 하나 나와.
"완전히 똑같아도, 생각이나 감각을 공유하지 않으면 동일체가 아니다."

그러면 반대로, 생각과 감각을 조금이라도 공유하면?
어? 그러면 나의 일부라고 인정할 수도 있겠네?

근데 여기서 또 하나의 질문이 생겼어.
"나는 과거, 미래의 나와 생각과 감각을 공유하고 있는가?"

봐봐, 과거의 나는 "오늘부터 운동해야지!" 하고 결심했어. 근데 현재의 나는? "에이, 오늘까지만 좀 먹자~" 하고 있고, 미래의 나는? "이제 진짜 운동해야 되는데…" 이러고 있단 말이지?

이 정도면 그냥 남이잖아. 남도 이런 남이 없어.

그러니까 결론이 뭐냐면, "나는 나를 챙길 수도 없고, 나를 믿을 수도 없으며, 사실상 내일의 나는 오늘의 나에게 복수할 존재일 뿐이다."

...근데 이런 생각 해 봐야 뭐해. 어차피 또 내일의 나는 오늘의 나를 원망하면서 똑같이 살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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